낙선재 일원은 창덕궁내의 생활문화의 결정체인 주거건축인 연조공간으로, 왕과 왕비의 정당이 아닌 소규모의 침전공간으로, 현존하는 궁궐내 다른 건물들에 비해 작고 소박한 모습이지만, 주 건물을 둘러싸는 행랑, 부속건물, 화계, 담장, 석물 등의 보존상태가 우수하여, 여타 궁궐의 연조공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여러 건축특성을 지님과 동시에, 후원을 중심으로 단상의 식재·수경공간이 위치하고 있다.
1.조영실제
1)낙선재 일원의 역사적 변화
낙선재 일곽이 조영되기 전 이 일대는 성종 16년(1485) 저승전을 중심으로 창건된 창덕궁 동궁으로, 영·정조시대 동궁의 주요 전각들이 소실되자, 정조 6년(1782) 중회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동궁지가 조영되었는데, 당시 낙선재와 석복헌이 영건될 지역은 동궁의 전각들이 소실 후, 영건 되지 않아 공지인 상태였으며, 동쪽으로 정조9년(1785) 수강궁의 옛터에 영건된 수강재가 있었다. 이에 후에 낙선재 등이 조영될 창덕궁 동궁지는 예전부터 양위한 상황과 대비의 소어처였던 덕수궁과 수강궁 터의 영역 내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왕세자의 처소 외에도 동조의 처소라는 특수한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장소적 특성이 있는 낙선재 일원에 헌종은 왕세자의 생활공간이 아닌 연침과 빈과 동조의 처소를 조영하게 되며, 이에 낙선재일원은 왕세자와 관련이 없는 연조공간으로서의 장소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
2. 입지성
1) 지형조건과 주변경관과의 관계
낙선재 일원은 창덕궁 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오는 나지막한 동산으로 위요되며, 특히 평지와 동산사이의 경사지는 장대석을 정연하게 쌓아 후원의 화계를 조성하였으며, 이는 동산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뿐 아니라 후원의 구성요소들 즉, 수목, 석물, 화담 등이 위치한다. 동산 위에는 주거를 위한 거물들이 배치되어있는 평지와는 달리, 시계가 외부로 확장되는 공간으로 주변의 자연환경 즉 인왕산, 남산, 낙산까지 조망이 가능하도록, 루와 정자를 배치하여 전경 및 차경으로서의 후원 공간을 조영하였다. 이 곳에 조영된 건물들은 평지에 조영된 주거지와는 달리 건물수도 적을 뿐 아니라, 좌향과 평면 모양이 다양함을 파악할 수 있었다.
3. 공간구성
1) 배치구성
낙선재 일원의 배치구성은 현재 대문으로 추정되는 이극문(장락문 앞의 외행랑 앞마당)을 지나, 솟을대문을 지나, 낙선재 일곽의 중심인 낙선재로 연결되는 진입공간과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건물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즉 마당이 중심이 되는 중정공간, 낙선재·석복헌·수강재 건물과 화계사이의 전이공간, 경사지형을 이용한 화계공간, 동산 위 루·정이 위치하고 있는 후원공간으로 분리·구성되는 배치상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건물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중정공간은 건물로 들어가기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공간인 동시에, 주 건물내에서 외부인이 출입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공간특성을 가진다. 건물과 화계사이의 전이공간은 외부인의 동선을 구분함과 동시에 괴석, 석분, 세연지 등의 점경물로서 선경을 상징하기 위한 은유로서의 공간특성을 가진다. 화계공간에는 식생과 굴뚝, 괴석 등의 점경물은 경복궁의 교태전 후원인 아미산과 창덕궁의 대조전, 창덕궁 통명전의 후원 및 상류주택의 후원과도 유사한 형태를 가지며, 동산 위의 후원공간에는 개방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낙선재후원 일원과 주변경관을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다양한 길상문양이 표현된 담장, 굴뚝, 석물 등의 점경물을 도입하였다.
2) 진입방식
동궐도형을 분석한 결과, 낙선재후원 일원은 건물별로 담장이나, 행랑으로 구분되어 있어, 하나의 영역이지만 각 공간이 독립성을 가진다.
건조물(建造物)
낙선재 일원의 기단부는 모두 장대석을 사용한 다듬돌 바른층 쌓기로 되어있으며, 기단윗면은 평원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돌로 마감하였따.
점경물
1) 석물
낙선재후원 일원의 석물은 7종으로 괴석(9개)을 비롯하여 세연지(1), 물확(1), 석상(1), 석대(1), 나무테(1), 노둣돌(1)이 있으며, 괴석의 경우 주로 낙선재건물과 화계사이의 전이공간과 후원공간내 한정당 전정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분의 형태는 사각형, 육각형, 팔각의 형태를 띄고 있다. 특히 사각형의 석분은 상·하단으로 구성되어있는데 하단의 경우 산예(狻猊)와 수구(繡球)가, 상단의 경우 전면에는 새와 구름 수파문이, 배면에는 모란이, 동쪽에는 연꽃이, 서쪽에는 연밥과 연꽃이 양각되어 있다. 세연지의 경우 낙선재 후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형태는 장식없는 단순한 방형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세연지를 받치고 있는 화강암 소재의 4개의 원모양 다리에는 연전문양과 세연지 전면에 '금사연지'라고 새겨져 있다. 작은 돌절구라는 의미를 갖는 물확은 석복헌과 수강재를 연결하는 합문옆에 위치하며 방형의 자연석에 윗면과 다듬은 형태를 띈다. 노둣돌의 경우, ㄴ자형태의 것이 낙선재 앞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초헌에서 내린 헌종이 땅을 밟지않고 계단을 이용하여 낙선재 안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2) 화계
경사지형을 처리하기 위해 조영한 후원 화계는 낙선재·석복헌·수강재와 5-9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화계의 구성은 장대석으로 낙선재·석복헌 영역의 경우 각5단, 석복헌 모서리부분은 3단 등의 형태로 해당지역의 지형에 맞게 축조한 것으로 화계 내에는 산철쭉, 앵두, 모란, 조팝등의 관목과 옥잠화, 비비추등의 지피류 등이 식재되었다.
3) 담장
낙선재후원 일원의 담장은 문양을 넣는 화담으로 귀갑문양과 포도, 매화, 당초문양이 있으며 특히 상량정과 상상와 일곽을 구분하는 화담인 경우 담장의 테두리는 괴자룡으로 장식하고 그안에 복(福0자와 희喜)자를 도형화하고 글자사이에 꽃을 형상화하였다.
결론
첫째, 낙선재후원 일원의 조영에는 창덕궁내 동궁지라는 장소적 성격이 1847년 헌종의 연침으로서 낙선재가, 1848년 왕세자의 빈인 경빈 김씨를 위한 석복헌과 순원왕후(1789-1857)의 육순을 위해 수강재의 중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낙선재후원 일원은 연조공간이라는 장소로 변화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둘째, 낙선재후원 일원의 입지는 창덕궁 내 북동쪽의 동산과 남서쪽의 나지막한 동산으로 위요된 곳에 입지하였기 때문에 주변과 자연스러운 영역성을 가지며 주변경관과의 관계에서는 후원화계 상단부의 루·정의 통한 주변의 인왕산, 남산, 낙산 등의 자연환경을 낙선재 후원의 통합적 시계 내에 포함시켜 건물과 후원과의 연계된 경관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셋째, 낙선재 일원의 공간구조는 낙선재 일곽의 중심인 낙선재로 연결되는 진입공간과 사용자의 특성에 따른 명확하게 구분되는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건물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즉 마당이 구성되는 중정공간, 낙선재·석복헌·수강재 건물과 화계사이의 전이공간, 경사지형을 이용한 화계공간, 동산 위 루·정이 위치하고 있는 후원공간으로 분리·구성되는 배치상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넷째, 낙선재 후원에서의 구성요소는 식물과 건조물, 점경물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식물의 경우 교목으로는 감나무, 선주목, 산돌배 등이, 관목으로는 산철쭉, 앵두, 모란 등이, 지피류에는 옥잠화, 비비추, 작약등이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건조물의 경우 주거기능을 담당하는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와 조망기능을 담당하는 평원루 등이 있으며, 점경물로는 괴석, 세연지, 물확, 석상, 석대, 나무테, 노둣돌 등의 석물과 화계, 담장, 굴뚝 등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