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문
들어가는 입구는 평삼문의 형태로 다른 어떤 능 입구에도 조성되어있지 않은 형태입니다.
2. 원지원도
조선왕릉 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지당의 기본틀은 방지방도이며 간혹 방지방도를 볼 수는 있으나 원지원도는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는 아닙니다.
3. 독일가문비 나무
아까시, 리기다소나무등의 사방목적으로 식재된 외래수목들을 점차 수종갱신사업등을 통하여 전통수목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중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에는 독일가문비나무가 꽤 심어져있습니다.
독일가문비 나무는 정원수로 많이 심는 나무이지만 그 형태가 축쳐지고 음습한 기분을 들게 하여 역동적이며 진취적인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소나무와 비교했을때 왠지 왕릉에는 맞지 않네요.
4. 어재실 등의 기와무늬
예로부터 용은 황제를 상징하는 동물로서 대한제국의 황제가 모셔진 어재실의 기와에는 용무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홍릉 좌측편의 지당
이것은 해설사에게 물어봐도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곳인데 실제 교수들 사이에서도 아직도 의미나 기능이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고 하네요. 두번의 해설을 들었을때 한분의 해설자가 이곳에 나무가 심어져있었으나 베어내고 없다라고 설명했는데 자료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는 하단에 잡초만 있을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지당의 역할을 한다면 입수구와 배수구가 있어야 할텐데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듬돌바른층쌓기로 잘 정비된 모습입니다.
6. 침전
기본적으로 홍릉과 유릉은 정자각을 대신하여 황제의 격에 맞는 침전형태로 조성되어있다는 것은 아마 쉽게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요.
7. 유릉
망국의 한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유릉의 조성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홍살문-정자각(침전)-봉분은 일자로 조성되어있어야 합니다. 간혹 홍살문을 지나 참도가 ㄱ자형태로 꺽인 형태로 조성된 경우는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정자각(침전) 정면에 서면 봉분은 건물에 가려 볼 수 없는 위치이지요 . 그나마 참도가 ㄱ자로 꺽여져 있는 정릉의 경우 계모를 미워했던 태종이 고의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유릉은 오히려 봉분이 좌측으로 삐죽이 나와 일자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릉은 일제에 의해 조성되었는데 조선백성의 회유책으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주긴했지만 봉분-침전-홍살문의 위치조차도 제대로 만들지않아 고의성을 다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봉분의 위치가 좋은 혈자리라 할지라도 침전이나 홍살문의 위치나 각도만 조금 옮기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유릉의 희롱적인 요소는 한가지가 더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아래의 두 사진은 각각 홍릉과 유릉의 석물의 모습입니다. 사진을 보기전에 한마디 언급하자면 홍릉의 석물은 우리의 장인이, 유릉의 석물은 일본인 석공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홍릉의 석물>
<유릉의 석물>
한눈에 드러나는 차이점은, 각 석물의 다리 사이를 막아놓았느냐 아니면 뚫어놓았느냐일 것인데 예를 숭상한 이들에게 유릉의 석물은 굉장히 천하게 보였다지요.
그 이유는 위의 사진처럼 말이나 그외의 동물의 음부까지 자세히 만들어 놓은 까닭입니다. 좋게말한다면 '사실적으로 조각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다른 능에 조성된 봉분옆 석양의 뒷모습에도 음부가 조각된 것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다시 한번 두 곳의 석물을 비교해 본다면 묘한 다른 느낌이 드는데 (이것은 해설사의 설명은 아니며 본인이 사진을 보다가 느낀것으로 지극히 주관적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홍릉의 석물은 망주를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는 형태로 조각이 된 반면, 유릉의 석물은 고개를 빳빳히 들어 확실히 불경스럽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8. 문무인석
홍릉과 유릉의 문무인석은 다른 능에 조성된 것과는 확실히 다른, 보다 사실적으로 조각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의 손으로 조각되었다는 유릉쪽의 문무인석이 보다 더 사실적이죠.
<홍릉의 문무인석>
<유릉의 문무인석>
<홍릉의 문인석 정면>
<홍릉의 무인석 정면>
<유릉의 문인석 정면>
<유릉의 무인석 정면>
조선 27대왕 중 유릉이전의 어느 문무인석도 유릉만큼 사실적으로 조각한 것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처음 본 느낌은 '참 잘 만들었다.'라는 생각이었으나, 보면 볼수록 사실적인 것이 곧 잘 만든 것은 아닐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게됩니다.
우리의 석공은 저런 사실적인 표현을 할 실력이 없었을까요? 그렇기보다 저렇게 표현한 작품은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된 것은 아닐런지.
이는 때론 과장되며 해학적인 모습을 가진 얼굴이 역시 우리 전통적인 사고에 좀 더 잘 맞는 것이라는 머릿속의 결론을 내리게합니다.
<보너스>
아래의 사진은 유릉아래쪽에 있는 조경요소입니다. 아래사진은 우물로 보이는데 위쪽사진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추후에 알아내고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