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3.06 『조선시대 서원의 조경』논문요약 2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은 관학인 중앙의 성균관 및 사부학당과 지방의 군현에 소재하는 향교가 있으며 사학으로는 지방의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 위치하는 서당이나 정사, 서원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중 서원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 강학과 선현의 향사라는 기능을 갖고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자치운영기구로서 조선시대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등의 전 분양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 서원은 제향과 강학의 기능을 가진 점에서는 관학과 차이가 없었지만, 제향의 중심대상이 공자를 비롯한 성현이 아닌 선현이라는 점, 설립의 주체가 국가가 아닌 사림이라는 점, 그리고 설립의 동기와 배경에서 관학과 차이를 가지고 있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조정에 의하여 서원의 존재를 인정받게 된다. 서원에 사액을 내린다는 것은 곧 서원이 갖는 중요한 기능인 선현의 봉사와 교화사업을 조정이 공인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서원 성립 초기에 서원의 입지는 주로 산수가 아름답고 읍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계곡이나 배산임수의 경사지에 위치하게 된다. 숙종조 이후에는 선현, 선사와 문중에서 선조를 봉안하기 위해 선현의 연고지를 중심으로 마을 인근에 사현 위주로 조영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붕당정치와 당쟁이 격화되고 가문의 권위를 높이고 양반신분의 유지를 위해 서원을 건립하고 문중의 인물을 향사하면서 서원과 사우의 제향인물에 구별이 없어지고 서원의 일차적인 기능인 장수와 강학보다는 사현의 기능이 더 강조되어 사우와 큰 차이가 없게 되어 사우로 불러야 할 것도 서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서원의 입지적 특성
서원은 일반적으로 산수가 뛰어나고 조용한 산기슭이나 계곡 또는 향촌에 마련되어 있으며 성격에 따라 절터 또는 퇴락한 사찰을 이용하는 경우, 선현의 연고지에 건립되는 경우, 서원에 배향된 선현들이 살았을 때 세운 서당이 발전하여 이룩된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성균관이나 향교가 조정의 직접적인 관여를 받았던 반면에 서원은 사학으로서 행정상으로 조정과 상당히 독립되어 있었고 또한 서원 제도 자체에 함유된 유가적 은둔사상 등이 결탁되어 행정의 중심지로부터 격리되어 설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원의 공간구성 - 장수와 유식
퇴계에 의하여 정립된 강학 위주의 본래 서원의 공간구성은 기본적으로 선현의 향사를 위한 사묘가 필수적이고 또 학문을 강론하는 강당이 있어야 하고 학생들을 수용하는 재사 외에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이나 서원을 지키고 관리하는 고직사, 서책을 보관하는 창고류 등의 여러건물이 요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서원의 개념을 말할 때는 장수(藏修)와 유식(遊息)이라는 두 단어로 표현된다. 장수는 마음을 집중해서 학문에 힘쓴다는 뜻이고 유식은 즐기면서 편안히 쉰다는 말이다.
1)장수의 기능으로서 존현강도(尊賢講道)
서원은 주로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전저후고의 경사면에 터를 잡으며 건물 배치는 사당이 서원 영역 뒤에 강당이 그 앞에 그리고 동·서 재사가 강당 앞에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사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제향공간과 강당 및 재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강학공간은 둘레 담을 조성하여 각각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하고 각 건물 상호간의 위계가 분명하여지며 건축배치상의 축이 뚜렷하게 표현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배치의 특징은 명확한 직선 축과 좌우 대칭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묘는 절제되고 정숙한 형태를 이루고 강당은 대칭 구조 속에 높은 격식을 갖추며 재사는 소박하고 간소한 외관을 이루어 전체 건물간에 뚜렷한 위계질서를 조성한다. 그리고 각 구성건물들은 중심축을 살리고 좌우대칭을 이루는 명확한 규범 아래 통제된 넋이다.
2) 성리학적 학문관과 유식
장수는 학문을 닦는 과정이며 유식은 학문을 닦는 과정에서 집중된 정신과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으로 재해석된다. 단순히 경젠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성정까지 닦고 기르는 공부가 시위를 팽팽히 당기는 장수하는 과정이라면 시위를 풀어내는 것은 유식하는 과정인데 이 도한 성정을 닦고 기르는 과정으로 포함된다.
정신과 성정을 풀어내고 기르는 유식의 공간은 서원의 주변 절승이 될 수도 있고 서원마당 안의 연못을 비롯한 조경시설이 될 수도 있으며 자연경관을 건축화 시키는 누각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서원의 외부공간과 조경
1) 서원 외부공간의 특성
사당영역이 정적이고 한정적인데 반해 강당영역은 다소 개방적이고 동적인 특성을 보인다는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2) 성리학적 자연관과 서원조경
앞서 얘기했듯 서원은 장수와 유식의 공간개념으로 파악하는데 이 때 유식공간은 조경공간을 구성하는 지당, 수목, 자연경물, 자연경관 등에 의해 형성된다.
지당은 대부분의 서원에 나타나지는 않고 남계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심곡서원, 죽림사 등에만 조성되었다. 조선시대 지당의 주류가 방지원도가 주류임에 반하여 방지뿐만 아니라 원형[각주:1]과 타원형[각주:2]도 나타나며 연못안에는 섬이 있는 것[각주:3]도, 없는 것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서원에 지당을 조성함은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집수지로서의 기능도 갖지만 궁극적으로는 도의를 기뻐하고 심성을 기르는 대상물로서의 역할이 강하다.
도산서당의 연지를 정우당이라 명명함은 주렴계의 애련설을 염두에 두고 연꽃과 같이 고아한 인품으로 청빈하게 생활하려고 함이었을 것이다.
3) 서원에 식재된 수목
서원에 식재된 수목은 매우 한정적으로 우선 행단과 관련된 은행나무 식재를 들 수 있다. 소수서원, 도동서원, 필암서원, 자운서원, 덕천서원, 신안서원 등에는 외삼문 밖이나 강당 영역 안에 은행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남계서원에는 매화, 대나무, 연꽃이,
퇴계가 조성한 화서암 정원에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 오이가 심어졌고
계당서원에서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 연꽃을 심어 자신을 포함하여 육우원을 만들었다.
또한 도산서당에는 매화, 대나무, 소나무, 국화를 심어 절우사라 명명하고 있다.
소수서원에는 퇴계가 풍기군수로 부임한 다음해 죽계 건너편에 송백과 대나무를 심어 취한대라 이름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식재사실만으로 식재의도를 살펴본다면 대부분 지조와 곧은 절개, 고매함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4) 서원조경속의 자연경물
산이나 물, 바위 등의 자연물은 조영자에 의하여 명명됨에 서원이라는 소우주의 영역에 포함되고 궁극적으로는 조영자의 사상과 철학이 내재된 성리학적 자연의 일부로 승화된다.
도산서당의 천연대와 천광운영대, 반타석, 탁영담
그리고 사산오대로 대표되는 옥산서원의 자연암반에 명명된 관어대, 영귀대, 탁영대, 징심대, 세심대
소수서원의 '敬'자의 각자와 취한대의 명명에서 보는 것처럼 대부분 성리학적 수양론,ㅡ 심성론, 출처관의 나타내는 성리학적 자연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 퇴계의 한서암 [본문으로]
  2. 죽림사, 타원형의 두개의 연지 [본문으로]
  3. 병산서원 광영지와 죽림사의 타원형 연지중 한 곳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