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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7 『산수유람정원의 거점, 樓·亭·臺』 논문요약
한국의 樓·亭·臺는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경관적인 측면에서 비교한다면 한국은 외부지향적, 중국은 내외부를 모두 중용시하는 양면지향적, 일본은 내부지향적인 경향을 보인다. 또한 樓·亭·臺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울타리 속에 가두어진 정원이 아니다. 자연인 듯 인공인 듯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 철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공간인 것이다. 물론 창덕궁과 같은 궁궐이나 소수서원과 같은 서원에도 樓·亭·臺가 있어 울타리 속에 가두어진 정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관동팔경과 같이 명승지를 지정한 한국식 팔경에 지정되어 있는 樓·亭·臺를 생각하면 가두어진 정원이 아닌 것이다.
강원도는 다른 도에 비해 臺가 유난히 많은데 이것은 강원도가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주 대상지가 된 臺가 많아 산수유람의 거점이 된 까닭이다. 한국의 관동팔경은 신라시대부터 유명한 유람의 장소이었다.

樓·亭·臺의 역사적 기록
한국에서 臺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누정보다 약 500년이 더 빠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성왕(B.C. 28년)때 「난새가 왕대에 모여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왕대는 주변 평야보다 모자 모양으로 약 600m나 높이 솟아 있어 사방을 관찰하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더 없이 좋은 전략적 요충지로 보인다.
한국에서의 臺는 이렇게 군사, 불교적인 목적으로 일찍부터 발달한 양식이다. 이에 반해 이보다 약 500년이 뒤진 누정의 기록은 470~480년대에 나타나지만 유상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 한국에서 亭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신라 소지왕때의 일로 천천정에 거동하였다는 기록이다. 누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개로왕(475년)때 기록, 백제 무왕(626년)에는 바다를 바라다보는 누(樓)란 이름을 갖는 망해루에서 신하들과 함께 연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삼국시대에 臺는 군사와 불교적인 목적이 들어가 있었으며 樓亭은 유상의 개념이 들어가 있었던 장소였다. 이러한 臺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면 유상의 개념이 확실하게 들어가게 된다.


樓·亭·臺의 정의
고려시대 이규보는 사륜정기에서 누각을 2층으로 된 집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정자는 개방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허창한 공간적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정자는 백성들이 쉬는 곳으로 정의하고 있다. 臺란 판을 대어 높이 쌓은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설문해자에 나오듯 사방을 볼 수 있는 높다란 곳도 臺이고, 사람이 올라가 볼 수는 없지만 독출하게 높은 곳도 臺이다. 樓·亭·臺의 차이점은 정의에 나타나듯 건물과 비건물로 나뉘어진다. 누정은 건축물이고 臺는 비건축물이다.
원야에서는 '臺는 돌로 높이 쌓되 위가 평탄한 것이거나, 혹은 나무를 엮어 높이 만들어 평판을 깔되 지붕이 없는 것이거나, 혹은 누각 앞에 일보 나오게 하여 시원하게 해놓은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계성은 臺에 대하여 세가지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공통점은 평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번째 정의처럼 나무 구조물인데 상부에 판재를 깔고 지붕이 없는 구조 같은 것은 인위적인 臺임을 알 수 있다.따라서 한국의 臺는 자연에 있는 높다란 바위를 의미하는데 반해 중국은 인위적인 평탄한 구조물을 의미한다.

자연문화경관으로서의 樓·亭·臺
한국사람들은 깍아지는 듯한 절벽 경치는 곧 시선이 내려오는 곳이고 그곳에서 자신이 놀고 있으면 자신도 곧 신선처럼 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현실과 이상과 상상이 바로 이 臺에서 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경관을 자연 문화 경관이라 한다.

산수유람의 거점으로서 樓·亭·臺
누정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거부감 없이 오를 수 있었으며 어떤 자연경관이 펼쳐질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오르게 되었다. 이 기대감이 인간과 자연, 즉 주와 객의 상호일치를 위한 준비단계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경치를 보는 순간 자연과 일치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과 자연이 일치하고, 주와 객이 일치하게 되는 거이다. 이렇게 樓·亭·臺가 한 고을의 좋은 경치를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산수유람의 거점이 된다. 다른 곳을 일일이 가 볼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한국 전통 정원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식 명승 팔경과 樓·亭·臺
팔경은 중국의 소상팔경에서 유래되었다. 소상팔경식은 '장소+경관'식으로 되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 신도한양팔경이 정해지는데 이것은 '장소'만 선정하는 한국식으로 팔경을 지정하였고 이러한 장소만 선정하는 한국식 팔경을 명승형이라고 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유명한 관동팔경과 관서팔경은 한국을 대표하는 명승 팔경이다. 관동팔경의 樓·亭·臺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문학으로 읊어 산수유람의 거점이 됨과 동시에 문학의 산실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시대 안축의 관동별곡, 조선시대 정철이 읊은 관동별곡, 그리고 겸제 정선의 실경 산수화가 있다.

결론
1. 臺에 관한 기록이  樓·亭보다 500년이나 앞서 있다. 臺 는 일찍부터 군사적인 목적으로 발달한 반면 정자는 유상하는 목적으로 하는 건물로 만들어졌다.
2. 樓·亭·臺 의 정의를 비교하면 樓·亭·臺 각기 다른 양식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자연에 있는 높다란 바위인데 중국은 인공적인 구조물이다.
3. 臺가 특별히 많은 道가 강원도인데, 臺가 많은 이유는 해안 일출 경관과 산악 경관이 뛰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4. 신숙주와 노사신의 정의에 의하면 樓·亭·臺는 유관(시간이 있을때 여유를 가지고 둘러 봄)하는 곳이다.
5. 樓·亭·臺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문학으로 읊어 산수유람의 거점이 됨과 동시에 문학의 산실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관동팔경, 관동별곡이다.